생각의자

내가 만일 나무라면...

극기상진 2015. 9. 21. 13:03

 

산에 가 보면 시원스럽게 잘 자란 나무들이 많다. 

훤칠한 키에 곧게 뻗은 모습이 보기에도 참 좋다.

마을 입구에 서 있는 오래 된 느티나무는 바라보기만 해도 얼마나 정겨운가.

봄 가을에 과일을 주렁주렁 달고 선 나무는 또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가.

해가 바뀔 때마다 봄 소식을 먼저 와 알려주는 산수유나무나 목련나무는 얼마나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.

 

그런 나무들을 바라보다가 내가 만약 저 많은 나무들 중에 한 나무라면 나는 지금 어떤 나무일까 생각해 본다.

큰집의 대들보로 쓰일 수 있을 만한 나무일까. 

누구나 좋은 재목이라고 탐낼 만한 곧게 자란 나무일까. 

동네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꽃나무쯤은 될까. 

혼자 골똘히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면 나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.  

그저 무슨 우울증이나 절망감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잘 알기 때문이다.

 

우선 내 자신을 갈고 닦는 일에 너무 소홀히 해서 속이 제대로 차 지 않다. 

수치기인이란 말이 있다. 자기 자신을 먼저 갈고 닦은 남을 다스린다는 말이다.

남을 다스리고 세상을 다스리려는 사람자기 자신에 대한 수양이 먼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.

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할 일을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일들을 하며 살아오는 동안 거기에만 매몰되어

자기 자신을 먼저 갖추어야 할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홀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.

 

내딴에는 줄기를 곧게 세운다 생각했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어떤 가지는 비비 꼬여 있는 걸 본다.  

대들보는 커녕 목재로도 쓰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다.  

이 세상 어떤 새들이든 다 내 가지에 둥지를 틀어도 좋다고 큰소리치다

허리가 휘어 있는 나무와 같지는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.

 

허세와 과욕과 무책임함을 거두고 본래의 제 모습으로 돌아와 제가 피울 수 있는 만큼의 꽃과 이파리만으로 겸손해져야 하리라. 

억지로 많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 하다 가지가 부러지는 나무처럼 살기보다는

보잘것없는 꽃이 피어도 그걸 보며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으로 기뻐할 줄 아는 나무가 되어야 한다.  

날개를 접고 쉴 곳을 찾던 새 한 마리 날아 와 편안히 쉬다 갈 수 있다면

잠시 그런 자리를 내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족한 그런 나무이어야 한다.

 

나무마다 다 제자리가 있고 크기가 있는 것인데

자신이 짐질 수 없는 것을 욕심낸다고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.

내가 부족한 나무면 부족한 대로 거기 서서 뿌리내리면 되는 것이다.

이 세상 모든 나무들이 다 하늘을 향해 올라가기만 하는 나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.

 

       

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----  도종환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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